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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컨트롤 | 2016년 09호
극단적 두 얼굴의 질병을 보며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소위 완치를 시킬 수 있는 병은 많지 않다. 그러나 평생 조절해가면서 살수 있는 질병들은 많아지고 있다.그중에서 특히 암은 보람과 아픔이 상쇄되는 두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질환이기도 하다
원자력병원암병원장 노우철 교수 기자 | 201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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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표현 중에 ‘a blessing in disguise’ 라는 말이 있다. ‘불행처럼 다가온 축복’ 정도로 번역하면 적당해 보인다. 유방암은 1기나 2기에서 발견하면 90%이상에서 완치가 가능하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90%이상의 유방암은 0기, 1기, 2기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초기 유방암이라고 진단 받으신 분들께는 즐거운 마음으로 치료를 받으시라고 말하곤 한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소위 완치를 시킬 수 있는 병은 의외로 많지 않다. 당뇨, 고혈압 등 많은 병들이 완치를 시킨다기보다는 평생 조절해 가면서 같이 사는 병이다. 암을 조기에 발견하여 완치 시키는 것은 현대의학이 이루어 놓은 대표적인 쾌거 중의 하나이다. 치료과정은 상당한 고통과 시간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현대의학으로 완치가 가능한, 그리 많지 않은 질병 중의 하나에 걸린 운이 좋은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면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유방암 치료 후 잘못된 생활 습관들을 고쳐 나가면서 몸도 더욱 건강해 지고 부부관계와 가족관계도 회복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럴 때는 ‘불행처럼 다가온 축복’이란 말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90%에서 완치가 가능하다는 말은 10명 중에 1-2명은 치료가 잘 안 된다는 뜻이다.
갓 결혼한 새색시가 남편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 왔다. 유방암 2기였다. 젊고 예의바르고 착실해 보이는 부부는 질병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 늦게 발견한 것은 아니고 충분히 완치 가능한 병임을 다시 한 번 설명하였고, 부부는 성실하게 끝까지 치료를 받겠다고 답했다. 수술이 잘 되었고 치료 원칙에 따라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까지 모두 받았다. 치료가 끝나던 날 부부는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고 앞으로 더욱 성실하게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1년이 채 안 되어 병이 재발했다. 병은 간과 폐, 뼈로 모두 전이가 되었으며 항암치료에도 반응을 하지 않고 급속도로 번졌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부는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를 받고 기도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숨을 거두는 날까지 나에게 치료를 잘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도대체 뭐가 고맙다는 것일까? 뭐가 잘 못 된걸까? 생각하게 된다.


한참 전에 3살짜리 어린아이의 유방암을 진단하여 수술한 적이 있었다. 세계 최연소 유방암이라 하여 언론에서 인터뷰도 하고 국제학술지에 보고도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세계 최초라는 말에 괜히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아이가 10년이 넘어서 중학생이 되어 재발이 되었다. 병은 폐와 늑막으로 많이 퍼져 있었고 얼마 안 되어 사망했다. 소아에서 발생한 유방암 (분비성 암이라 부른다.)이 청소년기에 재발하여 사망했다는 보고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유방암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우리가 죽을힘을 다해 반드시 정복해야 할 정말 나쁜 병이다.

본격적으로 유방암 환자를 본지 20년이 넘었지만 익숙해 질 수 없는 상황들을 계속 만난다. 암환자를 보는 동안은 이렇게 계속 보람과 아픔이 상쇄되는 생활을 하게 될 것 같다.


내가 특별히 남보다 친절한 의사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의사로서 가장 친절했던 시기가 언제였나 생각해 보면 요즘인 것 같다. 내가 암환자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잘 들어주는 것, 잘 설명해 주는 것, 공감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는 (또는 안하려 드는) 환자, 억지와 생 때를 쓰는 보호자들을 볼 때면 요즘도 울컥 화가 날 때가 있지만 화를 내는 빈도는 확실히 준 것 같다. 외래에서 하루에 150명씩 환자를 볼 때도 있다. 지친 몸으로 진료실을 나오면서 ‘난 오늘 꽤 친절한 의사였던 것 같아’ 라고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혼자 실없이 웃을 때가 종종 있다.

 

대한암매거진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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